Math and Philosophy 1

 

수학은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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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이 제시하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고찰의 시작
  • 수학은 추상화를 통한 생각의 본질에 도달하는 과정
  • “나”는 “타인”을 통해 존재한다

얼마전 differential manifold에 관해 공부하다가 문득 철학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이란 무엇일까? 또한 어떤 사물(Object)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내가 왜 이런 질문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해보려한다.

사과는 무엇인가?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고, 만져서 지각하는 사물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우리는 사물들을 주로 “언어”를 통해 인지하고, 분류한다. 예를들어 “사과”를 떠올려보자. 내 앞에 두 개의 사과가 있는데 하나는 멀쩡하고, 하나는 벌레가 파먹었다고 해보자. 그럼 이 둘은 분명 다른데 왜 같은 “사과”라고 생각하는걸까? 보기에 달라보이는 둘의 공통점은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과의 성질”을 색이 빨갛고, 베어먹으면 아삭한 식감을 가지고 단단한 것이라고 정의해보자. 하지만 이 “성질”은 아직 “사과”들만 지칭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사과도 덜 익었을 때 색이 달라지고, 아삭하고, 단단한 과일들은 사과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것이 분류학이 탄생한 이유임을 알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사과”의 생물학적 분류를 만들어 놓았다. 조금만 찾아보면 사과는 식물 중에서 속씨식물군으로 분류되며, 장미목, 장미과 등등에 속한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이상한 질문을 해보려 한다. 이런 분류를 하기 위해서는 사과의 식물세포 안에 들어있는 DNA가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그렇다면 어떤 두 DNA가 “같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두 object가 같은가 다른가를 판단하는 것을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우린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된다.

같음은 무엇인가?

두 과일의 차이점을 분석하기 위해 DNA 분석을 진행한다고 해보자. DNA가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DNA를 구성하는 분자구조가 같음을 의미한다. 분자구조가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종류와 원자들이 결합해있는 모양이 같다라는 것이다. 모양이 같다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언뜻 당연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정말 간단하고 쉬운 질문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같음”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혹자는 “아니 우리는 오감을 통해 본능적으로 같은 사물들을 분류하고, 인지하는 것인데, 굳이 복잡한 정의를 만들어서 그것에 부합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나?”라고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나와 타인의 오감이 같은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인지하는 것이 ‘같음’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현실에서 두 개의 object가 “같다”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완벽하게 엄밀하지 않다. 같은지 다른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이런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현실세계를 잠시 떠나서 공리를 통해 구축된 완벽한 사고실험을 할 수 있는 고요한 수학의 세계로 가보자.

공간의 같음은 무엇인가?

수학의 세계에서도 사실 “같음”을 우리는 잘 모른다. 물론, 1과 1이 서로 같음을 알 수 있다. 평면에서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원이라고 하면, 반지름이 같은 원과 원은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실 “분류”라고 할 수 없다. “1과 1이 같다”라고 말할 때 “같음”은 사실 동어반복이다. “1월은 1월이야” 또는 “사과는 사과야”라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의미있는 분류를 시작하기위해, 먼저 우리의 직관적인 판단(또는 본능)에 의존해보자. 우리는 반지름의 크기가 다른 원도 같은 “원”으로 부른다. 모든 약간 찌그러진 원은 “타원”이라고 부른다. 모든 평평한 면을 “평면”이라고 부르고, 높이와 반지름에 상관없이 원통으로 생긴 것들을 모두 “원기둥”으로 부른다. 생각해보면 이는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물체를 인식하는 방법(보고, 만지고, 듣고)으로부터 나온 분류법이지만, 여기에 어떤 “규칙”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반지름의 크기와 상관없이, 찌그러진 정도와 상관없이, 높이와 밑면에 상관없이 라는 말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를 다시말해 “자르지 않고, 늘이거나 줄이거나 구부려도 우리는 같은 것으로 본다”라는 기준을 세워볼 수 있다. 이 기준이 절대적으로 옳다라는 것은 아니다.(옳은 것은 사실 없다. 이 기준을 통해 분류하면 원과 타원은 같게 된다.) 다만 일단 이렇게 기준을 세워놓고 이 기준에 맞게 수학적 정의들을 세운 뒤, 물체를 분류했을 때, 우리의 직관과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지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위상수학(Topology)으로 이어지는데 위상에 대한 기술적 분석은 다음에 다루려고 한다. 그전에 우리는 도대체 뭘 늘이고 줄인다는 것인지 알아야한다.

뭘 늘이고 줄이고 구부린다는 것인가?

도대체 뭘 늘이고, 줄이고, 구부린다는 것인가? 사고 실험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인데 “무엇”을 늘이고, 줄인다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존재”가 필요하다. A가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집합론(Set theory)의 시작이다. “존재”라는 단어 마저도 “B”라고 추상화하면 앞의 문장은 “A가 B한다.” 또는 “A가 B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은 동시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Set B라고 한다. A는 Set B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않으며,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 이러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세계를 정의한 것이 수학적 “공리”다.

수학은 사실 현실세계를 그대로 표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맡고, 만져서 알아낸 어떤 패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저 놀 뿐이다.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굉장히 재미있는 철학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분명 A의 존재성을 나타내려고 했는데, B가 필요하게 되었다. “A는 B이다.”라는 어떤 “의미있는” 명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object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A의 존재는 B로부터 출발하고, B의 존재도 A로부터 출발한다. 이 둘은 서로를 존재하게 하며, 서로 다르지만 사실 다르지 않다.(언뜻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더 나아가면 어떤 object의 본질은 사실 다른 object와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상호작용, 관계맺음 자체가 우리의 존재다.

타자와의 상호작용이 없으면 우리는 없어진다.

이렇듯 수학의 세계에서 얻은 영감은 다시 현실세계의 교훈이 된다. “나”라는 의식은 내 환경과의 상호작용 그 자체이며, “사람”으로써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그 자체이다. 반대로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없으면(깜깜한 암흑 속, 텅빈 공간, 죽음 등) 나는 없으며, 다른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없으면(인간이 멸종한 세계, 외계인의 행성 등) 나는 사람이 아니다. 정말 재밌지 않은가? 다시 사과얘기로 돌아가보자. 사과를 사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은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사과를 보는 내 머릿속에 그려진 어떤 것과 사과를 보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그려진 어떤 것이 서로 관계 맺어지지 않으면 “사과”라는 분류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수학적 사고에는 철학이 들어있다

집합론을 처음 배울 때, Set은 element의 모임인 것을 배운다. Element는 set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않으며, 동시에 만족할 수 없다. 사실 여기까지는 직관적이고, 쉽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우리는 set간에 function이라는 것을 배우고, topology에서는 continuous function을 정의한다. 수학은 사실 항상 이런식이다. 어떤 object를 만들면,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다른 object와의 관계(morphism)을 연구한다. 두 Set은 사실 function으로 연결되고, 두 topology space는 continuous function으로 연결되고, 두 group은 homomorphism으로 연결된다.(이런 패턴에 관심이 있다면 Category theorem을 찾아보시길..) 처음 이런 낯선 개념들을 배울 때 왜 수학자는 어떻게든 function을 정의하고 연구하려고 하는걸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되었다. object들은 morphism이며, 그 둘은 같은 것임을. 절대적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둘 이상의 상호작용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수학적 사고에는 사실 언뜻보면 불교사상과도 같은 철학적 사상이 담겨있다. 수학을 공부할 때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염두해두고 공부하면 수학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논리를 만들었는지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가 간다. 이것을 알고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모르고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천지(天地) 차이다. 혹자는 수학을 단순히 패턴을 찾아내는 것으로 배웠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패턴을 찾는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패턴을 찾는 것은 수학을 하기위한 “도구”일 뿐이다. 수학은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이다. 의미있는 수학은 사실 철학이다.

난 왜 철학이 문과인지 모르겠다.